오늘의 강의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쓴 것이 아닙니다
이름과 달리, 그 본문은 여러 세기를 거쳐 자리 잡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신앙을 요약한 것으로 여겨져 그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까
초기 교회는 세례를 줄 때 신앙을 한 줄로 고백하게 했습니다. 그 고백의 문장은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고, 로마 교회에는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이어진 고대 로마 신경이라는 표준 전례 본문이 있었습니다. 이 본문이 오늘 우리가 아는 사도신경의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자
사도신경이라는 이름은 사도들이 직접 썼다는 뜻이 아닙니다. 390년경 밀라노 회의 무렵에는 열두 사도가 각각 한 조항씩 기여해 열두 조항이 완성되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렌초 발라가 그 믿음에 역사적 근거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지금의 형태는 5세기 중반 남부 갈리아에서 발전했고, 온전한 초기 형태가 처음 나타난 것은 710년에서 714년 사이입니다. 그 전까지 로마 교회의 표준 전례 본문은 4세기부터 7세기까지 이어진 고대 로마 신경이었고, 이 본문은 8세기 후반에 갈리아 형태로 대체되었습니다. 결국 사도의 이름이 붙어 있지만, 본문은 여러 세기를 거쳐 자리 잡은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390년경 밀라노 회의 무렵, 교회 안에는 열두 사도가 한 조항씩 기여해 열두 조항이 완성되었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본문의 권위를 세워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로렌초 발라는 이 이야기에 역사적 근거가 없음을 밝혔습니다. 이후에도 본문은 지역 교회의 예배 속에서 조금씩 다듬어졌고, 로마 교회가 쓰던 고대 로마 신경은 8세기 후반에 갈리아 형태로 대체되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어떻게 이해해 왔을까
사도신경이 사도들의 손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고백문의 가치를 깎지 않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사도신경의 본문이 사도들 자신에게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도들의 신앙을 충실하게 요약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사도신경이라 부른다고 봅니다. 이름이 가리키는 것은 저자 개인이 아니라, 그 고백이 이어받은 신앙의 뿌리입니다.
모두 똑같이 생각할까
사도신경의 본문이 사도들 자신에게서 유래했다고 보는 견해와, 사도들의 신앙을 요약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뒤쪽 입장을 취합니다.
자주 생기는 오해
이름에 '사도'가 들어가니 사도들이 직접 쓴 글이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러 세기를 거쳐 자리 잡았고, 사도들이 각각 한 조항씩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역사적 근거가 없습니다.
교수의 한마디
이름 하나에 담긴 뜻과, 그 이름이 붙게 된 사정은 다를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읽을 때 '누가 썼나'보다 '무엇을 이어받았나'를 먼저 물으면, 이 고백문이 오래 살아남은 까닭이 조금 더 가까이 보입니다.
한 줄 정리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쓴 글이 아니라, 사도들의 신앙을 요약한 고백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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